시와 글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기타노 다케시/권남희 옮김/2007

안에서나를봐 2010. 4. 5. 15:18

●제 3 장

              관계 문제  우정이란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다

 

‥‥‥ 

 

우리 집이 특별했는지도 모르지만, 돈에 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엄격하게 교육을 받았다. 돈 가지고

어머니에게 이러니저러니 말했다가는 죽도록 혼났다.

누구든 돈을 갖고 싶어 하지만 그런 것에 휘둘리면 인간은 천박해진다는 것이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가난뱅이의 괜한 자존심이라고 하면 그뿐이지만, 나는 그런 자존심이 싫지 않았다.

인간은 살생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섹스를 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 똥도 매일 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을 갖고 싶다느니 하는 당연한 말은, 똥 싸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아무리 폼을 잡아도 한 꺼풀 벗기면 욕망의 덩어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한

꺼풀의 자존심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문화'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하류'로 여기는 천박함을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 300만 엔인가 얼마인

가의 연봉으로 사는 법인가 뭔가 하는 책이 잘 팔렸던 적도 있었지만, '무사는 굶어도 배부른 척한다'

는 사무라이의 기개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부자 행세를 하고 싶은 일념으로 명품 가방을 할인 판매하

날이면 눈빛이 달라지는 천박함을 왜 이제 아무도 비웃지 않게 되어버린 건가.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어머니는 절대 덤핑하듯 파는  가게에 가서 줄을 서지 않으셨다. 아무리 먼 가

게여도 1엔짜리를 사는 손님도 소중하게 대하는 가게에 다니셨다.

"가져가, 도둑놈." 그런 말을 들으면서 물건을 사는 건 참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

옛날에는 그런 공통된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그걸 역으로 취해서 개그를 했다. 인터뷰를 할 때 '나만큼 돈을 벌고, 나만큼 행복해지면 된다.

남들이야 아무래도 좋다" 라고 말하면, 옛날 기자들은 깔깔 웃었다. 그런 인정머리 없는 말은 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을 모두 갖고 있었으므로, 예사로 웃어주었다.

하지만 요즘은 걸핏하면 "아, 그렇습니까?" 하고 진지한 얼굴로 듣는 기자들이 있다. '어, 이 기자는

진짜로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기는 건가.' 그럴 때 "지금 한 말은 개그였네" 하고 정정할 수도 없

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 말이 개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절이 돼버린 것이 쓸쓸하다.

우정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없

는 것을 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네게 곤란한 일이 생기면 내가 꼭 도와줄게. 내가 곤란할 때는 네가 도와줘. 우리는 친구잖아."

이런 건 우정이 아니다.

야쿠자의 혈주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보험 흥정에 지나지 않는다. 보험은 규모 있게 많이 들어두는 편

이 좋으니, 야쿠자들은 되도록이면 형제를 늘리려고 한다.

하지만 두세 명 사이에서 흥정하는 보험은 의미가 없다. 누군가가 손해를 보아야만 한다. 누군가와 친

구가 되려면 처음부터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 좋은 기억만 갖겠다는 태도는 상대에게 확실하게 민폐

를 끼치는 것이다.

"네가 곤란하면 나는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곤란할 때 나는 절대로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다."

이런 자세가 옳다. 서로에게 그렇게 생각할 때 비로소 우정이 성립한다.

'옛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는데 너는 지금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하고 생각한다면, 그런 건

처음부터 우정이 아니다. 자신이 정말로 곤란할 때 친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이 진짜 우정이다.

요컨대 우정은 내가 저쪽에다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지, 저쪽에서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아니다. 우정

이란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다.

애초에 우정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다. 손익으로 따지자면 우정은 손해만 볼 뿐

인 것.

'그래도 그 녀석이 좋다. 곤란한 걸 알면 도와주고 싶다.' 그런 내 마음을 사느니 못 사느니 운운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이야기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나를 위해 죽어줄 사람이 몇 명 있는 것보다 그 녀석을 위해서라면 내가 목숨 바칠 수 있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는 게 인간으로서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은 그런 의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게는 친구가 몇 명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