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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한 살 불량 노인, 여전히 건재합니다
‥‥‥
나는 '벗기는 것'이 특기입니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입가에 카레가 묻어 있구먼"
하고 말해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말 대신에 "콧김이 상당
히 세군요"하고 말해봅니다.
이런 대화가 대개는 사람을 친근하게 만듭니다. 외골수로 성실
해 가지고는 속내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도덕군자인 듯 구는 사
람과는 몇 년이 지나도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나를 정말로 이상한 영감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은 모양입니
다. 며칠 전에도 아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충고를 하더군요.
"모 대학의 조교수를 하고 있는 여성이 구니다치에 사는데, 간
테이 씨에 대해 '그 사람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색골에다가 불
량스럽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하고 말하던데요."
그야말로 걱정도 팔자라고 말해야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
다. 대신 "그건 사실이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나는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가르치던 "대가 선생'과도
깊은 친분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최근에는 제법 쓸 만한 작품
을 만들어 내는 거 같구먼" 하고 말해줍니다. 그렇게 추켜세워 놓
고는, "남을 가르치는 쓸데없는 일을 하다 보면 끌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하며 설교까지 해주었지요.
그는 친구가 아닙니다. 세키 사토시라는 제 친동생이지요. 젊을
때 장사를 가르쳐 성공시켜 내 스폰서로 키울 생각이었는데, 뭘
잘못했는지 조각가가 돼버렸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내 생각
처럼 돌아가주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이야기가 엉뚱하게 빠졌군요. 그 조교수인지 뭔지 하는 여성을
언제 꼭 소개시켜달라고 그 사람에게 말해두었습니다. 그 조교수
를 만나면 친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좋습니다. 그런 사람이 난 더 좋습니다.
'아무개가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계심이라는 무거운 갑옷
을 입고 있지요. 이처럼 갑옷을 입은 사람은 반드시 마음 깊은 곳
에서는 갑옷을 벗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우리 집에도 옛날에 쓰던
갑옷이 있는데, 정말 무겁지요. 마음에 갑옷을 입고 있으면 첫째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갑옷을 입으면서도 한편으로
빨리 벗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는 간단하지요. 하기야 난 벗기는 게 특기니
까요.
어떻게 그런 테크닉을 배웠느냐고요? 이런 말을 하면 제가 지
금도 여전히 불교 수행을 하고 있는 사람 같겠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갑옷을 벗으면 상대의 갑옷도 벗겨진다는
것을 알았던 겁니다.
불교란 한마다로 말하자면 '벗기는 재주' 같은 것입니다.
자아, 집착, 욕심 등등 인간의 마음속에는 늘 그런 것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과 충돌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녹초가 되도록 지쳐버리지요.
마음을 비우는(그런 게 가능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비우려고 애를 쓰면
누구든 안될 것도 없지요) 일은 자아를 죽이고 집착을 버리고 욕심에
서 멀어지려는 행위입니다.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미야자
와 겐지처럼 무심하게 어린애처럼 웃을 수 있는 경지일 것입니다.
불교에 관심을 가진 것은 10대 무렵이었는데 조숙하게도 '인간
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언가?' 하는 등등의 고민이 생길 무렵부
터였지요. 오랜 세월을 지나서야 간신히 얻은 그 해답이라는 것은
뭔가를 얻는 일이 아니라 버리는 것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내게 달라붙어 있던 집착과 욕망(지금 젊은 사람들의 말로 하자
면 자기중심)을 버리는 것임을 깨달았던 거지요. 활기찬 나날을 보
내고 싶으면 갑옷을 벗듯이 여러가지 군더더기를 벗어버리면 되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갑옷을 입지
요. 자기 마음과 몸을 지키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아무리 갑옷을
몇 겹씩 껴입는다 해도 안심할 수 없는 게 세상입니다. 모두들 자
기 갑옷 속에서 전전긍긍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에도 몸이 움츠려드는 게 갑옷 입은 사람
의 심정이라고 합니다. 몇 겹을 입어도 안심할 수 없다면 아예 벗
어던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런 결의를 다지고 각오를 키워 그
걸로 족하다는 경지로 이끄는 것이 불교입니다.
나 자신은 갑옷을 겹겹이 입고 상대더러 '벗어던지라'고 해봐
야 아무런 설득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벗어던
지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은 더할 수 없이 가벼워지지요. 그러고
나면 사른 사람들의 답답한 갑옷이 그대로 보입니다.
그래서 '벗어던지라'고 말합니다. 이런 기술을 터득하면 사람
사귀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겁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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