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나를 위해서만> 라인하르트 K. 슈프렝어 지음 / 류동수 옮김
<내 인생 나를 위해서만>
- 죽을 때 후회 없을 단 한 가지 삶의 태도
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뜻한 바를 행하라. 그리고 그 댓가를 지불하라.
- 스페인 격언
01 당신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02 굿바이 칭찬, 굿바이 우물쭈물
03 내 인생 최고의 조언자는 바로 나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한 12가지원칙
8원칙
칭찬은 외부의 평가 기준에 의해
내 삶을 재단하게 만든다.
칭찬,
'타인주도적' 삶을
살게하다
칭찬이 사람 잡는다
뭔가를 해냈는데 남이 그걸 보고 잘했다고 말해주면 보통은 다들 기
뻐한다. 남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뿌듯함에 계속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으면
뭔가 서운한 기분이 든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직장상사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자네가 여기서 아무리 일을 잘해도 칭찬하는 말은 단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을 거야. 그런데 말이지, 한번 삐끗하면 당장 지옥행이야."
일할 맛이 나겠는가?
자녀들은 부모에게 이렇게 항의하고는 한다.
"엄마는 왜 만날 나를 야단만 쳐? 내가 잘한 거에 대해서는 한 마
디도 안 하면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만큼 강력한 동기부여 요소이다. 이는
비단 아이들 교육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칭찬은 어른들 사이에
서도 매우 '인간적인' 상호교류 방식으로 이용된다. 따라서 내가 지
금부터 하고자 하는 말에 '감정적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칭찬은 사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자존감에 손상을 가하는 기제
이다. 칭찬이란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해도 결국 '위에서' 내려오
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칭찬은 공허하다. 거기서 뭔가 실질적인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말뿐인 것이다. 게다가 사람을 오도誤導하기도 한다. 스스로
를 과대평가하게 만들거나 잘못된 겸손으로 이끈다.
칭찬은 또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칭찬을 받지 못
하면 추진력을 잃어버린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남이 나를 대신해
서 결정해주기 때문에 결과를 조작하기도 한다.
칭찬은 사람들의 품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우리는 칭찬을 받으
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기본적인 자기 방어조차 무너져 내린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나
는 여러분에게 즉각적 평가는 잠시 유보한 채 나의 글을 읽어주기를
부탁드리는 바이다. 경험에 비춰보건대, 이 '칭찬'이라는 주제에 대
해서는 사람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칭찬은 남의 평가에 목매게 한다
칭찬에는 늘 성과 또는 태도와 관련된 평가 과정이 선행한다. 이 평
가 과정이란 본디 인물 자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이 행한
일과 관련이 있다. 칭찬과 성과 사이에는 성과가 있으면 칭찬을 한
다는 일종의 물물교환적 성격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수많은 부모, 교사, 사업주들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찬장 속 통조림처럼 칭찬을 보관하고 있다. 누군가 '기대 이상의 것'
을 한다 싶으면 그 대가로 칭찬을(말하자면 보상의 일부로)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알 수 있는 칭찬의 본질적 특성은 그 평가가 언제나 독
점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누가 무엇을 잘했고 못했는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고, 그러한 평가를 받는 사람도 항상 정해
져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칭찬은 두 가지를 행하고 입증한다. 첫째는 평가 관계이고,
둘째는 계급 구조이다.
칭찬은 위에서 아래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자애로운 부모가 착
한 자녀를 칭찬하고, 공정한 사장이 노력하는 직원을 칭찬한다. '위'
와 '아래'를 확실히 규정해주는 것이 바로 이 칭찬인 것이다.
이러한 권력 관계의 차이는 몸짓언어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깨를 두드려주는 동작을 떠올려보자. 이 행위 자체가 곧 권력을
상징한다. 여러분은 상사의 어깨를 '인정한다는 듯' 툭툭 두드려주
는가? 아무리 젊은 세대라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일 것이다.
윗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아랫사람에게 받는 칭찬을 은근히 기
분 나빠한다. 그런 행위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 혹은 건방진 태도
로 비춰질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사장은 교육훈련생에게 칭찬을 받았다며 굉장히 불
쾌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을 평가하다니 주제넘은 녀석 같으니라고."
또한 칭찬은 칭찬하는 사람을 윗사람으로 만들어주기만 하는 것
이 아니다. 자신을 띄우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긍정적 평가에서 주목할 것은 평가가 긍정적이라는 점이 아니라
그것이 평가라는 점에 있다. 즉, 평가를 내림으로써 평가자 자신의
등급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칭찬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칭찬과 그 조건의 본질은 이와 같은 관계의 비대등성에 있
다. 그리고 그것은 자립성이라고는 없이 남의 평가에만 의존하는 사
람들을 양산해낸다. 이들은 단기적으로는 열정과 의욕이 넘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무책임하고 조건에 순응하고 있을 뿐이다.
온 세상에서 찾고 있는 인물이 이런 이들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칭찬에 목매는 사회가 개척정신과 창의성으로 무장하여 자기
만의 길을 가는 자립적 인간을 만들어낼 수 없는 이유이다.
칭찬은 일종의 조작이다
내 친구가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우리 마누라한테 '그 옷 당신한테 아주 잘 어울리는데!' 하
면 마누라는 늘 '으이구 이 수전노 영감탱이야!'라고 한단 말이야. 대
체 왜 그러는 거지?"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남편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늘 저녁은 유달리 맛있네!"하면 아
내는 어떤 기분이 들까? 회사 사장이 여러분을 불러서 "몇 달째 눈
여겨 보았네. 자네의 업무 처리 능력은 정말 탁월하더군. 회사에서
내가 믿을 사람은 자네밖에 없네. 바쁘겠지만, 이 시급한 프로젝트
에도 신경 써주게나." 하고 말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 것 같
은가?
칭찬에는 언제나 어떤 의도가 숨어 있다. 바로 여러분에게 무언
가 원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칭찬으로 뭔가를 얻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칭찬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칭찬하겠는가? 그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무
언가를 남이 행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칭찬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이들이 소리 지르고 쿵광거리며 뛰어다니지 않게 되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부모이다. 절대 아이들이 아니다.
때문에 칭찬은 늘 조작적이다. 가장 진심 어린 선의의 칭찬까지
도 음흉한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마치 관용구처럼 함께 붙어 다니는 '칭찬과 꾸짖음'을 생각해보
라. 이때의 칭찬은 꾸짖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이는 독일 연방군의 근무 지침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질책은 칭찬하는 상관에게서만 온전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는 적임자라고 칭찬하면서 외지로 좌천시키는 경우에 좀 더
뚜렷해진다. 이런 경우 칭찬이 갖는 조작성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칭찬은 자유를 빼앗아간다.
팀 내에 늘 자리를 비우고 비협조적인 직원이 있다. 그렇다 보니 그
직원의 일을 동료들이 나누어 처리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직원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동료들을 칭찬한다. 참 부지런하다고.
여러분이 애정을 갖는 동호회에 얼마 전 한 젊은 친구가 대표로
뽑혔다. 여러분은 글 멍청하고 쥐뿔도 모르면서 말만 많은 인사로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총회 자리에서 다년간 동호회 내 청소년 봉사
활동을 이끌어온 여러분의 노고를 칭찬한다.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데에는 이길 사람이 없는 사장이 진작 올
려줬어야 할 월급은 안 올려주고 칭찬만 끝없이 늘어놓는다.
남을(더구나 나를!)칭찬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인정해줄 수
없는 사람에게 받는 칭찬이나 나를 이용하기 위해 하는 뻔한 칭찬!
이럴 때는 정말이지 아무리 그럴듯한 칭찬이라도 사양하고 싶다.
가장 명확한 예를 경영자 세미나에서 만날 수 있다.
"월급을 올려줄 수 없다 싶으면 칭찬이라도 듬뿍 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몇 달은 참고 넘어가거든요."
여러분도 이미 눈치챘다시피 이 모든 게 바로 '보상성 칭찬'이다.
그러나 이를 단호히 거부하기에는 사실 용기가 부족하다. 그래서 순
순히 다음과 같은(오랜 시간 사회/문화/통념적으로 강요된)내면의 소리를
따른 것이다.
"설사 원치 않을지라도 절대 칭찬을 거부하지 말라. 어떻게 그저
선한 의도롤 칭찬한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이 진짜로 의도한 것은 바로 이것일 수 있다.
칭찬은 행위의 자유를 제한한다.
여러분이 여름철 소낙비 맞듯 칭찬을 덮어 쓴다 해도 그건 정당
하다. 누가 칭찬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겠는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비판에 대해서는 방어가 가능하지만 칭찬에 대해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칭찬으로 인해 자유가 죽어나간다.
칭찬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외견상
선의로 보이는 그것에 반대나 저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고귀한 동기로 인해 모든 비판에 재갈이 물려지는 것이다!
누군가 자기에게 유리한 무엇을 여러분이 행하게끔 하기 위해 칭
찬이라는 실패 없는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다. 그는 여러분에 대한
통제권을 원한다.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 더불어 가능하다면 고마움
까지도 요구한다.
이런 형태의 통제권 행사는 여성에게 특히 더 나타난다.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수많은 여성들은 아내로서, 엄마로서, 가
정주부로서, 또 직장인으로서 여러겹의 부담을 감당하고, 그 과정에
서(남성에 비해)착취를 당한다.
이때 여성들을 옭아매는 말이 바로 "당신은 좋은 아내이자 좋은 엄
마야.""나는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어.""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도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다니 대단한걸." 등이다.
이런 칭찬이야말로 불만을 토로하고, 힘겹다 외치고, 못하겠다고
선언할 자유를 빼앗아가는 주범이다.
..................
자신의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사람, 칭찬을 곁눈질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만이 '탁월'이라는 수식어를 당
당히 지닐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상대의 동의나 거부를 초월한 채
열정과 과단성을 갖고 자기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칭찬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 자신의 길을 간다.
"나는 사장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지 않고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일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반대로 칭찬을 희구하면 남을 위해, 남에 의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평가 기준이 아닌 외부의 평가 기준에 의해 자기 삶을
재단하게 된다. 결국 타인의 행동과 평가가 우리의 삶을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인생 자동차 운전석에 남을 앉히는 꼴이다. 남에게
자기 인생을 운전하게 하고, 자신은 뒷자리에 앉아 차가 굽은 길을
지날 때마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몸을 기우뚱거려야 하는 것이다.
주변의 환호만을 바라면
나이를 먹어도 결코 성숙해지지 못한다.
칭찬 말고 주목하고 교감하라
이제 이런 질문들이 내게 던져질 것이다.
"그래. 좋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익에 대한 기대 없이)존경의 뜻을 표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여기서 특히 중점을 두어 살피고자 하는 것은 칭찬이 우리에
게 그리고 우리의 자유에 미치는 결과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우호
적인 태도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우리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해
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의 칭찬을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감으로 변
환시킨다면, 이는 자신이 스스로를 그리 대단찮게 여기고 있음을 누
설하는 것이다. 자존감이란 애초에 찾아볼 수도 없고, '타존감他尊感'
만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는 남의 눈에 띄어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이 있
다. 어찌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타인의 호의적인 애정보다 더 푸근
한 것이 어디 있겠으며, 그들이 내게 관심을 갖고 내 생각에 공감해
주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남의 주목보다 더 강력하
게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칭찬이 아니라 주목이다. 칭찬이 아니라 우호적 관계이다.
칭찬을 더 받았으면 좋겠고, 타인의 이런저런 찬사가 큰 도움이
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정말 다른 조건 없이
순수하게 기뻐할 만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하고 물어보면 한 가
지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그들이 느끼는 것은 접촉의 결여이다. 따뜻하고 진심어린 교감의
부재이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관심을 갖고 눈여겨 봐주는 것,
오직 그것이다.
그들이 갈구하는 것은 성과를 내는 존재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
서의 자기를 남들이 알아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무조건적 관심은
태초에 사라진 지 오래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건적 관심, 즉 칭찬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칭찬에 맞서는 대응전략으로 내세워야 할 것은 다
른 사람의 성공에 함께 기뻐하고 함께 축하하는 것 (그 후에 뭔가를 얻기
위한 축하가 아닌), 아량 있고 우호적인 존중, 적극적인 이웃 사랑 등이
될 것이다.
이때의 이웃 사랑은 자기를 희생하는 이웃 사랑, 굳이 자신을 낮
춰가며 자선이라도 행하듯 하는 그런 이웃 사랑이 아니다. 조건 없
는 우정 속에서 정감을 표출하며 스스로 만족해하는 솔직한 이웃 사
랑, 도덕적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접근하기에 더욱 현명하고 따뜻한
이웃 사랑이다.
같은 칭찬이라도 그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이 아닌 진심이 될
수 있다.
일례로 "이것 참 잘하셨군요!"하고 말하는 것과 별다른 수식 없이
도 "정말 고맙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상대를 평가하는
메시지(일을 정말 훌륭하게 하셨군요.")를 보내는 것과 자신의 느낌을 표현
하는 메시지("선생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참 기뻤습니다.")를 보내는 것은 다
르다. 상대의 전부를 칭찬하며 내세우는 것("아동의 욕구구조에 관한 선생의
조언은 제 딸과의 갈등을 푸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은 차이가 있다.
또한 칭찬이 자기 결정 능력에 부정적 효과를 갖느냐는-앞에서도
설명했다시피-맥락에 크게 의존한다. 사람들이 서로 눈높이를 맞춰
서 대화하고 일하는 곳에서는 칭찬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
서 이 모든 것을 정확히 잘고려할 필요가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절대 무조건적인 사랑, 존경, 주목을 받을 수
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칭찬이 이를 표현하는 올바른 수단인 경
우는 매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