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의 작업실 / 김갑수
쓸쓸한 날에도 그렇지 않은 날에도 나는 커피를 볶는다
"의식이 있고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 무의식 속에는 우리 자신의 열등한 자아가 숨어
있다. 그것을 그림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타자에게 투사한다. 분
노, 질시, 원한, 공포, 회한......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온갖 어두운 충동들은 바로 무의식
속의 그림자가 의식의 표면으로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분석심리학의 노대가 이부영 교수와 한 시간 대담을 하는 동안 뇌리에 남은 그의 말
들이다. 칼 융이 말한 마음속의 그림자. 의식의 골짜기 아래 저 깊은 심연 속에 숨어 있는
열등한 자아가 그림자라는 것이다. 혹시 실체와 그림자가 뒤바뀐 채 살아가는 사람은 없
을까. 그런 처소는 없을까.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고통. 그림자가 안겨주는 마음
의 고통. 고통의 이유와 레퍼토리는 세월 따라 나이 따라 끊임없이 변해가건만 단 하나
변함이 없는 것은 고통스럽다는 사실이다. 열등한 자아로 한세상 살아가게 만들어진 종
자의 태생적 불우. 거리의 행인들을 하나하나 붙들고 다짜고짜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삶이, 존재가, 영혼이 그리고 이 세상이 고통스럽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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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히하우젠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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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다들 친하거나 한때 친했던 사람들이다. 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서로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상히 알고 지내는 일이 사실은 괴로움이다.
친분은 괴로움의 확장이다. 어떠한 친분으로도 괴로움의 질량을 감쇄시킬 수가 없으며
생겨나느니 뮌히하우젠 신드롬(Munchausen syndrome, 남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거짓말로
아프다고 하거나 지인이나 자녀나 애완동물에게 해로운 약물을 복용시키거나 폭행을 구사해 남들
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다가 마침내 자기도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에 도취해버리는 증후군) 같은
것이다. 관계의 친밀성이 바로 이 증상을 유발하기 쉽다.
정말 딱한 것은 그닥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친분이다. 같이 일을 하는 사이도, 지
인의 지인으로 소개받은 사이도, 막연한 인연으로 자리를 함께한 사이도 순식간에 정겨
워지고 살가워지는 일이 흔하다. 까놓고 까놓아야 하는 관습이다. 말짱 가면무도회. 그럼
에도 연출된 친분은 예절이자 올바른 인성으로 통용된다. 그런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우
울해 보이는 종족이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처음 본 사람과도 반가와 어쩔 줄 모르는 표정
으로 악수를 한다. 선거 때 악수를 거듭하다 손이 부르튼 여성 정치가의 하소연을 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맙소사! 그 정도라면 그녀의 인생이 부르튼 것이다. 가짜 인사로 부르튼
인생, 참 가긍하여라.
친하다는 것은 자기 확장 의지를 뜻한다. 그러나 가망 없는 시도가 아닐까. 타인에게
서 나의 일부를 발견하고자 하는 행위는 횡포다. 순수의 이름으로 사람과 사람이 적나라
하게 닿는 일은 일종의 작은 폭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지금 나는 인간 혐오, 관계 혐오,
대인 기피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규정하자면 타인 의존을 통한 자기 방기
가 끔찍하다는 말이다. 뚝 떨어진 작업실에서 외로움에 몸서리를 치면서 전화를 기다리
는 나. 그러다 누군가 찾아오면 그 불편함과 구속감을 참아내지 못하는 나. 사람이란 내
고통의 뿌리가 닿아있는 영원한 소재다. 당신은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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