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울지마, 죽지마, 사랑할 거야/김효선

안에서나를봐 2010. 3. 16. 21:45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의 붕괴

  

‥‥‥‥

   그래서일까, 미래의 허상을 잡기 위해 버둥대느라 오늘 내게 허락

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를

테면 가족이 다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일이라든지, 사랑하는

두 딸이 매년 운동회에 계주 선수로 뽑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든

지 하는 일상의 행복들을, 당연히 내게 주어진, 아니, 나 아닌 다른

사람 누구라도 누리는 지극히 사소한 것쯤으로 치부했다. 더구나 내

가 그토록 안전하다고 믿던 그 당연한 것들이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2004년 12월, 방향을 알지 못한 채 질주하던 열차는 결국

멈춰 서고 말았다. 그것도 가장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방법으로, 내

일 혹은 훗날 찾아올 행복을 기다리는 어리석음  대신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행복을 미리 알아차렸더라면, 평온한 일상이야말로 가

장 놀라운 기적이란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아 차렸더라면‥‥, 그러

나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어 있었다.

 

   아침에 서연이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창백한 얼굴. 손바닥을 보

니 얼음장같이 차갑고 희다.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일단 늦잠을 재운 뒤, 오후에 학교에 데려다주어 남은 두 시간 수업

을 받고 오게 했다. 물론 서연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오늘이 서연의 마지막 수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서연이 그토록 사랑했던 학교 교정과 사랑하는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과 작별의 인사라도 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

   왜일까. 이 불길한 느낌이라니. 아직 검진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

는데 왜 자꾸 방정맞은 생각이 드는 걸까. 애써 머리를 흔들었지만

마음은 벌써 요동치고 있었다. 지난 주말, 동네 병원을 다녀온 이후

로 엄습해오는 극도의 불안감, 의사의 말을 듣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징후로 보아서는 백혈병이 분명했다. 그럴 리가 없다. 내 딸 서연이

가 그럴 리가 없다. 아니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