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 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
5 죽음은 나를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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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기쁘
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행동한다. 이제 나는 말을 못하게
되어서 그들은 단어를 말할 때마다 목소리를 높여 지나칠 정도로 또박
또박 발음한다. 얼굴 근육도 일부 마비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바
라보는 눈길이 멍해질 때도 있다. 말을 해서는 안 되었지만, 내가 말을
하려면 무진 애를 써야 한다. 사람들에게는 그 표정이 화난 것처럼 보
이는 듯하다.
"왜 그렇게 악을 쓰니?"
요즘에는 사람들이 내 뺨을 톡톡 두드리곤 한다. 어린아이를 다루듯
머리를 톡톡 치는 경우는 정말 최악이다. 나는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식
의 그런 동정이 싫다. 동정과 공감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먼 것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사람들이 소망을 빈다. 그러나 나는 소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 진실과 믿음 같
은 소망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이다.
사물과 사건 모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제발
사람들이 나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그보다는 네 귀에 대고
당신의 비밀을 속삭여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는 진지하다.
나에게서 달아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니까.
알다시피 나는 그냥 나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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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의 물막이 목재에 밴 타르 냄새가 감돈다. 그리고 해변에서 날
아오는 갈대와 썩은 나뭇잎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물이 차다. 나는 마
지막 남은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고 믿고 싶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리고 겨울 날씨가 매서웠을 때, 아버지와 몇
몇 마을 장정들은 베네른 호수에 얼음덩이가 일 미터씩 두껍게 얼게 되
면 그 얼음덩이를 밧줄에 묶고 도르래를 써서 전나무가 우거진 숲속까
지 날랐다. 그곳은 태양빛이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얼어붙은 물이 만
들어낸 무늬와 물거품, 그리고 현란한 레이스 모양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차가운 저장창고 지붕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지붕에 뚫어놓은 구멍 사이로 얼음덩이를 끌어내리면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허전해졌다. 톱밥을 채운 그 얼음 무덤에 우유
와 치즈, 그리고 사우나 훈제한 햄을 넣어두면 여름 휴가철 내내 신선
하게 보관되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이 일을 즐겼다.
그때처럼 경이로운 마음을 안고 나는 이제 내 추억의 방파제 위를 걸
어간다. 그리고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평화로운 기분이 들기를
나는 바란다.
물은 내게 생명을 주었다.
바다는 내 힘의 원천이다. 그 힘이 내 생명을 지켜준다.
바다가 너희들 울리카, 카린, 폰투스, 그리고 구스타프의 생명 또한
지켜줄 것이다.
해변에서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밧줄의 반 매듭을 풀고 바다에 몸을 맡긴다.
바다에는 하얀 조랑말 같은 물결이 일렁인다.
나는 편안하게 갑판 위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그러면 바람이 노를 저어 나를 바다에 데려다준다.
나는 이내 평화로워진다.
황혼녘에 바람이 속도를 늦추면 나는 내 안식처에 닿아 있을 것이다.
모든 순간이 삶이다.
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는 2004년 3월 10일,
자택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