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파도 - 도종환

안에서나를봐 2009. 11. 13. 09:47

파도 / 도종환

 

아침이 되자 파도는 시침 뚝 떼고 돌아누워 있다

어젯밤엔 밧줄로 묶어 놓아도 소용없었다

묶여져 있는 목선들은 저희끼리 부딪혀 금이 갔고

자리를 잘 지켜오던 나무들도

감추어 둔 뿌리의 일부가 드러난 채 쓰러져 있다

평온한 날들이 지속되는가 싶으면

주기적으로 끓어올라 뒤집어놓고 나서야

다시 제 속으로 돌아가는 파도

저 파도의 안과 밖을 나도 어쩌지 못 한다

파도도 물결도 어찌할 수 없는 내 몸의

일부임을 부인하지 못 한다

고요히 가라앉아 있는 수면 아래에

늘 출렁이고 있는 게 어디 바다뿐이랴

적요한 몸짓으로 입 닫고 있는 파도를

아침 바닷가에 나와 말없이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