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에서 졸다 / 정철훈
몇 정거장을 지나친 것을 뒤늦게 알고
화들짝 일어섰다 멋쩍게 주저앉는다
늦은 장마철이어서 그나마 빈자리가 있었던 것인데
다리는 무겁고 눈꺼풀은 저절로 감기고
내 모르는 새 지나친 정거장만큼
생을 훌쩍 건너뛸 수는 없을까
내릴 곳을 잊은 채 두 눈을 멀뚱거리는
낯선 얼굴이 차창에 어룽댔다
실은 내릴 곳을 영영 잊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나친 정거장만큼이나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자각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스쳐 지나간 정거장으로 돌아가야 할지
그대로 앉아 있어야 할지
다음 행선지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내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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