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글

작고 못 생긴 참외 하나 - 박윤일

안에서나를봐 2009. 11. 13. 14:23

  작고 못생긴 참외 하나 / 박윤일

 

  먹기에도 번거로운 작고 못생긴 참외 하나 어머니 사시

던 동림상회 앞 궤짝에 버려두었더니 술 취해 오가는 사

람들 은근슬쩍 갈지자 오줌줄기에 장사치들 싸움질하며

뱉어대는 욕지거리 가래침에 하역하는 인부들 쇠심줄 타

고 흐르는 땀방울에 있으나마나 간이천막에서 줄줄 떨어

지는 빗줄기에 흥건하게 젖어 썩어 뭉그러졌다 궤짝 가득

냄새 풍기며 싹트는 사랑 썩지 않으면 너를 낳을 수 없다

왁자지껄 다투어 돋아나오는 초록을 보면 그 누구의 생이

썩고 있기에 나는 이렇게 철없이 이파리 무성한가 감쪽같

이 피어난 노란 꽃잎 위에 꽃잎보다 작은 내 눈물 딱 한

방울만! 작고 못생긴 참외 하나 또 여물겠다

 

 

'시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백일홍 - 정영선  (0) 2009.11.15
용대리에서 보낸 가을 - 이상국  (0) 2009.11.13
야채사(野菜史) - 김경미  (0) 2009.11.13
파도 - 도종환  (0) 2009.11.13
맨발 - 김용택  (0) 2009.11.11